엑스박스 계정 오류가 생겨 게임을 플레이도 못하는 상황이고 하니(...), 생각난 김에 패키지 관련 글을 한 번 써보려고 합니다.
콘솔의 초창기 시절까지 갈 것 없이 몇 년 전만 해도, 게임을 구매하면 게임팩, CD 등등 실물 패키지를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뿐. 게임의 디지털 판매라는 개념은 생소하고 낯선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해가 갈수록 점차 게임의 디지털 판매량은 실물 패키지의 판매량에 근접하고, 이윽고는 추월하기에 이르렀는데요. 거기에 이르는 과정과 원인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정보를 모으고 의견을 토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스팀의 대두와 인디게임의 엄청난 태동
PC게임의 물리적 매체를 파괴하는 과정에 이르러선 이 스팀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단순히 게임회사의 유통망을 벗어나 이제는 하나의 플랫포머라 해도 과언이 아닌 스팀은 게임의 디지털화에 엄청난 박차를 가하는데 일등 공신이나 마찬가지인데요. 대부분 패키지로 구매하던 PC게임들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다운로드 판매로 전환시켰고, 디지털 매체가 가진 장점을 사람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 어라? 그건 PC게임 이야기지 콘솔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싶으실 텐데. 맞습니다. 스팀이 주도한 것은 PC게임의 디지털 다운로드지 콘솔 쪽이 아니었죠.
하지만 기종이 다르다 해서 개발자와 소비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스팀을 운영하는 기업, 밸브의 창업자 게이브 뉴웰은 스팀의 활성화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게임을 구매하는 유저들은 물론, 게임을 판매하는 개발자 양쪽에게 많은 편의성과 혜택을 제공하여 유저를 늘리려고 사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스팀 그린라이트]라는 시행착오가 섞인 과정을 겪고 안착한 [스팀 다이렉트]는 한국돈으로 약 13만 원의 보증금을 지불하고 스팀에 게임을 발매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게임의 기본요소도 갖추지 못한 어중이떠중이들이 마구 스팀에 게임을 등록하려는 상황을 걸러냄과 동시에, 게임의 작품성을 인정받고 매출이 증가하면 보증금도 반환해 주는 인디게임 개발자들에게는 기회의 문이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스팀이 인디게임 개발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며 자신들의 플랫폼을 더욱 확장시켜 나갔고, 그에 따라 이용하는 유저들도 늘어났습니다.
실물 패키지와 디지털 용 게임은 판매에 이르러선 비등비등한 정도였지만, 발매되는 게임에 이르러선 디지털 쪽이 패키지 쪽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자, 그렇게 늘어난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무조건 스팀에만 게임을 발매했을까요? 아니지요.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등 다른 플랫폼에도 자신의 게임을 출시하여 판매영역을 더 넓히고자 했을 겁니다.
가령 자신의 게임을 엑스박스로도 출시하고 싶은 인디 개발자가 있다고 치지요. 업로드부터 유통을 도맡아 해 주던 스팀과는 달리 엑스박스에서 발매하기 위해선 다른 유통사와 계약하거나, 개발자나 개발사 스스로 유통까지 맡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디지털 전용으로만 판매하던 스팀이야 별 고민거리가 없었지만, 엑스박스에서 패키지용으로 게임을 발매하고 싶다? 바로 비용이라는 문제가 떠오르게 됩니다.
공장에서 시디 찍고 패키지 박스에 포장하고 이까짓 게 가격이 얼마나 나가겠냐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돈이 없어 자신의 게임소개 사이트도 부실하게 운영하는 인디개발자들에게는 결코 가벼운 금액이 아니겠지요. 예산이 빵빵한 유통사가 달라붙었다면 모를까, 스팀에서 미리 외부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극소수'의 인디게임이 아니고서야 그런 빵빵한 유통사가 자청해 패키지판을 내주는 일은 찾기 힘들 겁니다. 대표적으로 [하데스]가 이런 소수의 게임 중 하나였죠.
하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유통사라면 판매량이 얼마나 나갈지 장담을 못하는 상황에 모험을 걸고 패키지를 판매하고 싶진 않았을 테니, 결국 스팀과 다를 바 없는 디지털 판매로 방향을 자리 잡게 됩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죠. '어라? 디지털로만 판매하는 게임이 더 많다면 당연히 디지털 게임의 전체 판매량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거 아냐?'
네, 그렇습니다. 일종의 통계의 함정이라 할 수 있죠. 다운로드 게임의 판매 대수가 늘어난 것은 디지털 게임으로'만' 판매하는 게임의 양도 무시 못할 정도일 테니까요.
그러나 통계 수치와는 별개로 실제로 디지털 전용으로만 게임을 발매하는 개발사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유저들 역시 점차 바뀌는 트렌드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돈 없는 인디제작사들의 게임뿐만 아니라, 메이저라고 할 수 있는 게임회사의 작품들도 편의성과 신속성을 위해 게임을 다운로드 판으로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죠.
2. 사태를 가속시킨 판데믹
2020년 즈음부터 코로나의 영향으로 전 세계가 판데믹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때의 고통과 어려움은 당시 상황을 겪었던 분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계시겠죠. 반면 게임을 포함해 몇몇 업계는 때 아닌 호황을 누렸는데, 넷플릭스 같은 OTT 업체도 포함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던 2020년 시기에 넷플릭스의 시청자수가 급증한 것을 아실 수가 있습니다.
바로 격리 조치나 외출자제를 하면서 집안에만 있어야 할 상황이 닥친 것입니다. 속된 말로 인싸 활동이 불가능해지고, 집돌이가 돼버린 이상,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놀이는 한정적이죠. OTT감상과 비디오 게임 등등입니다.
게임에 한해선 이때를 기점으로 외출을 자제하는 바람에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쇼핑하지 못하고, 디지털 판을 구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됩니다.
2021년 말 즈음 사이버펑크 2077은 역대 최대 규모의 디지털 게임 판매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른 게임개발사들도 디지털 매출이 패키지 판매량을 앞지르고 있으며, 일본의 대표적인 게임사 캡콤(Capcom)은 게임 매출의 약 80%가 디지털 다운로드에서 발생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는 물리적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더 저렴한 가격을 제공하는 디지털 전용 콘솔을 출시를 선택합니다. 물론 물리 디스크 드라이브(ODD)가 장착된 고가의 PS5 또는 Xbox Series X를 구입한 경우에도 디지털 다운로드 게임을 구매할 수 있는 선택이 주어집니다. 이런 디지털 전용 콘솔은 소비자를 엑스박스나 플레이 스테이션의 온라인 스토어로 효과적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판데믹과 겹치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게이머가 오프라인의 잠재적 즐거움과 자유보다 디지털의 보장된 편의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량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 많은 게이머가 디지털 다운로드를 선호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최신 게임을 구매하기 위해 게임스탑에 줄을 서는 대신, 자정이 되면 다운로드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디지털 미디어의 성장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지난 콘솔 세대에 걸쳐 형성된 트렌드를 가속화한 것일 뿐이다. -IGN
3. 오프라인 매장의 축소
사실 코로나 시기라고 해서 사람들이 다운로드판으로 무조건 게임을 구매한 것은 아닙니다. 패키지 게임 역시 온라인으로 주문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미국에선 아마존, 베스트바이, 게임스톱과 같은 웹사이트는 오프라인 게임 판매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우리나라 역시 옥션이나 지마켓 같은 오픈마켓뿐만 아니라, 소매점이 직접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등을 통해 게임 패키지 판매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판데믹으로 한 번 타격을 입었던 업계는 쉽게 회복하지 못했고, 디지털 전용으로 발길을 돌려버린 구매자를 다시 실물 패키지 쪽으로 돌릴 만한 매리트가 있었던 것도 딱히 아닙니다. 손님들이 방문이 예전만치 않던 많은 게임샵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미국 최고의 게임가게 프랜차이즈였던 게임스탑도 직격으로 타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판데믹이 본격적이었던 20년부터 올해까지 400여 점 이상의 점포가 폐업 혹은 이전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 소도시에 하나쯤은 존재한다고 할 정도로 광범위한 사업을 벌이던 게임스탑은 게임판매점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친구들끼리 모여 구경도 가고 게임체험도 해보는, 게임라이프에 있어선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프랜차이즈라고 합니다.
이 회사가 휘청이기 시작하면서 게임스탑 주가폭등이라는 흥미로운 사건도 벌어졌는데요. 간략히 설명하자면, 게임스탑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이 회사의 주가가 떨어지는 쪽으로 투자를 했고, 그에 반발한 일반 주식투자자, 소위 개미들이 주식을 사들여 오히려 주식이 반등했던 사건입니다. 사건 자체는 흥미롭고 더 적을만한 내용이지만,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와는 큰 관련이 없으니 간략히 만 언급하겠습니다. 요지는, 주가 반등이고 뭐고 이전에 게임스탑이라는 게임패키지 전문 쇼핑업체의 미래에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국내 역시 이런 바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동네 게임샵을 포함해 많은 가게가 자취를 감추었고, 플레이스테이션의 총판을 담당하던 에이티게임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콘솔 게임 판매의 성지라고 불리던 국제전자센터 9층에서도 게임샵이 점차 줄어가고, 피겨샵 등이 늘어나고 있단 풍문을 들었습니다. -다만 이것은 팩트 체크가 되지 않은, 어디까지나 풍문으로 전해 들은 것으로 정말로 게임샵이 유의미한 감소를 보였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나마 닌텐도는 실물 패키지 판매수량을 잘 유지하고 있는 듯한데, 게임샵 같은 게임 단독매장이 아니라 대형마트 등에서 판매 호조를 보이는 등 가족 단위의 소비자를 잘 끌어들이는 전략이 성공적으로 먹히는 듯합니다. 실제 동네를 걷다가 '주말이니 우리 애들하고 닌텐도나 하면서~'등등의 대화를 귀동냥하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도 아닙니다.
단, 닌텐도가 직접 제출한 자료에서 마저 디지털 게임 매출 비중이 점차 우상향 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닌텐도라 할지라도 디지털 다운로드 시대의 흐름에서 계속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5. 엑스박스의 상황은?
이 문단을 적기 위한 지나치게 긴 서론을 끝내고 일단 저의 주 사용 콘솔이 엑스박스니 국내의 엑스박스의 패키지 현황에 대해서도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 엑스박스의 패키지/DL(다운로드) 시장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든 거의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왜냐고요?
엑스박스 전용 패키지 게임은 아주 예전부터 굉장히 적게 발매하고 있거든요.
... 이런 기류는 전(前) 세대 콘솔 기종이었던 엑스박스 원의 출시 시점으로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갑니다. 엑스박스 원 발표 당시, 중고게임 거래금지 및 항시 온라인 필수라는, 당시 기준으로는 급진적이다 못해 적대적인 정책을 발표한 마이크로소프트는 말 그대로 사방에서 두드려 맞고 얼마 안 가 정책을 철회했습니다.
그런데 저 정책들, 디지털 게임이 대두하는 작금의 상황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 않나요?
마이크로소프트는 결국 이전부터 게임의 매체를 물리 디스크에서 다운로드로 옮기고자 했던 것입니다. 엑스박스 원 출시 몇 년 뒤, 게임패스 같은 게임형 구독제라는 생각하기 힘든 사업 아이템까지 꺼내 디지털이란 공간에서 자신의 파이를 넓히고자 했지요.
그런 마이크로소프트가 패키지 사업을 더 넓히고자 할까요? 심지어 2024년 1월, 패키지 사업부를 폐쇄했다는 뉴스까지 전해졌습니다.
... 그래서 결론은? 게임 매체로서 디지털이 이기든 실물 패키지가 이기든 엑스박스용 패키지는 구하기 힘듭니다(...).
자사의 퍼스트 스튜디오 타이틀도 국내에선 패키지로 출시하지 않을뿐더러,
서드 게임사도 아주 유명한 곳 몇몇 만이 소량으로 국내에 패키지를 수입해 올 뿐입니다. 예를 들자면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나 엘든링, 최근의 철권 8 정도가 있겠습니다.
6. 향후 디지털 다운로드가 완전히 대세가 될 것인가?
분석가들은 오프라인 판매는 서서히 줄어들고 디지털이 플레이어의 주요 게임 구매 방식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 예상으로는 10년이 지나면 디지털이 완전히 지배적인 형태가 될 것입니다.
- Dr. 세르칸 토토 (게임 컨설턴트)
대부분 분석가들은 패키지 게임이 당분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 게임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에 방문하는 하드코어 게이머들의 소비자층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운로드 코드보다 실제 게임을 구입하는 것에 더 만족을 느낀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분석가들은 실물 패키지에 아무리 집착하더라도 머지않은 미래에 디지털이 업계의 진정한 강자가 될 것이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게임 컨설턴트이자 칸탄게임즈 창업자인 토토 박사는 “현재 PlayStation과 Xbox모델의 수명 주기가 끝나는 10년 차에는 디지털이 완전히 지배적인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현세대인 엑스박스 시리즈 X와 PS5가 2020년 말에 나왔으니, 10년 차가 되려면 아직 6년 이상은 남은 셈이군요. 영화에 OTT와 구독제가 상승세라도 블루레이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듯, 저 역시 게임 패키지가 어느 날 갑자기 훌쩍 소멸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글인 엑스박스 게임의 구매방식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